문화광주의 추모 방식
2018년 05월 16일(수) 00:00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서 ‘광주가 통곡할 때 그들은 웃고 있었던’(광주일보 5월10일자 1면 보도) 사진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상처입은’ 광주시민들에게 뜻깊은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광주시립미술관 2층 전시실에서 열린 ‘2018 민주·평화·인권-세계민중판화전’의 개막식. 이날 전시회에 참석한 윤장현 광주시장은 지난 9일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발표한 1980년 광주 미공개 영상물의 ‘사진 한 장’을 언급하며 축사를 시작했다.

문제의 사진은 1980년 5월27일 광주를 피로 물들인 소준열 전남북 계엄분소장과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준병 제20사단장이 옛 전남도청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다. 계엄군의 집단발포와 진압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그날, 사진 속 두 사람은 ‘미션을 완수한’ 개선장군의 표정, 그것이었다. 3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흑백사진에선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세계민중판화전은 광주시립미술관과 5·18 기념재단이 광주민중항쟁 38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공동으로 기획한 특별전이다. 20세기 반전평화 미술가인 독일 출신의 케테 콜비츠, 양심적 일본인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적 아픔을 형상화한 도미야마 다에코, 민중들의 삶과 신명을 표현한 한국의 판화가 오윤 등 3개국 예술가의 작품 5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 출품작 가운데 유독 내 시선을 끈 건 도미야마 다에코의 5월 판화컬렉션이다. ‘군대’, ‘포로가 된 사람들’, ‘죽은 자’ ‘학살’ ‘광주의 레퀴엠’ 등의 작품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의 미공개 영상물을 화폭에 재현해 놓은 듯 강렬했다. 마치 ‘그날, 그곳에서’ 사진을 찍은 것처럼. 특히 뱃속의 아이와 함께 사망한 여인의 참혹한 모습(‘학살’)은 1980년 5월21일 남편을 찾으러 나섰다가 변을 당한 임산부 최미애씨를 떠올리게 했다.

“예술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 끝에 깊은 슬픔과 만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도미야마 다에코가 광주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데에는 이 같은 남다른 작가정신이 있었다. 1971년 ‘재일간첩단 사건’에 연류된 서승 객원교수(우석대)를 면회하는 등 한국의 양심수 구명에 앞장섰던 그녀는 ‘광주 소식’을 전해들은 후 불면의 밤을 보냈다. 이번 판화컬렉션은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탄생된 작품들이다.

서른여덟 번째의 5·18을 맞는다. 올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추진 등 미완에 그쳤던 5·18의 진실 규명에 한 발짝 다가섰다. 하지만, ‘5월의 일상화’는 여전히 더딘 것 같아 안타깝다. 그렇다고 ‘특별한 추모’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한번쯤 그날의 깊은 슬픔과 오롯이 마주하기’. 평범한 시민들이 생활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추모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조금 바쁘고 힘들더라도 ‘오월 광주’를 노래한 전시회나 음악회에 들르시길. 5월이 가기 전에.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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